2010년 5월에 열렸던 All Things Digital: D8 컨퍼런스에서 월트 모스버그(Walt Mossberg)와 카라 스위셔(Kara Swisher)가 100분 가량 스티브 잡스와 했던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유튜브 영상)

내 피가 무지개색이기 때문이다

“Because I bleed in six colors”

이 말은 스티브 잡스가 직접 한 말은 아니고, 애플 직원이 잡스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한 말이다. 애플에서 쫓겨났던 잡스는 12년 만인 1997년 다시 CEO로 복귀한다. 하지만 애플의 상황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았고 파산까지 약 90일이 남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아이맥, 맥북,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성공시키며 사망 직전이었던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일궈낸다. 그리고 인터뷰 바로 몇일 전 애플의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선다. 카라 스위셔는 이에 대한 소감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우리 업계에 오래있었던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하지만 상관 없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가총액은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떠서 회사에 오게 하는 이유도 아니고 고객이 우리 제품을 사는 이유는 더더욱 아니다.”

원문 보기 For those of us that have been in the industry long time, it’s surreal. But it doesn’t matter very much. It’s not what’s important. It’s not, you know, what makes you come to work in the morning. And it’s not why any of our customers buy our products.


애플로 복귀한 잡스는 애플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당연히 떠났을 거라 여겼던 뛰어난 사람들이 아직도 애플에 남아있었다. 기적과 같은 상황에서 잡스는 ‘대체 당신이 왜 아직도 여기 남아있는건가요?’ 라고 물었다.

“내 피가 무지개색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퍼뜨리고 싶어하는 가치를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힘들게 일할 수 있었다.”

원문 보기 They said ‘Because I bleed in six colors, which was the cold six-colored Apple logo. And that was code for ‘Because I love what this place stands for’. And that just made all of us want to work that much harder to have it survived, have that value survived and bring it back.



(초창기 애플의 6색 로고)

어떤 말을 타야 미래로 빨리 갈 수 있을 것인지 기술적인 관점에서 잘 선택해야한다.

“Choosing what horses to ride, technically”

잡스는 2010년 4월, Flash에 대하여(Thoughts on Flash)라는 공개 서한을 썼다. 얼마 전부터 애플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서 더이상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플래시의 개발사인 어도비는 연일 언론에서 애플을 비판하고 있던 터였다. 참다못한 잡스는 이 공개 서한에서 왜 플래시를 버려야했는지, 왜 이 결정이 애플 플랫폼의 개발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좋은 결정인지 설명한다. 모스버그는 잡스가 공개 서한에 쓴 말이 다 맞다 하더라도 이런 급작스러운 결정이 과연 소비자에게도 득이 되는 일인지 반문한다. 다음은 잡스의 답변이다.

“애플은 그 어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술적인 관점에서 어떤 말을 탈지 신중하게 선택했고 그로 인해 성공을 거뒀다. 기술은 각자의 삶의 주기가 있다. 우리는 태동기에 있는 기술을 선택한다. 그러면 정말 많은 시간을 아낄수 있다. 그 아낀 시간으로 유망한 기술이 우리 제품에서 끝내주게 작동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너무 많은걸 넣으려다보면 그저그런 제품 밖엔 안된다. 애플은 여지껏 그래왔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5인치 플로피 디스켓을 3.5인치로 교체했다. 소니가 발명하긴 했지만 우리가 처음으로 상용화했다. 1998년에 출시한 아이맥 1세대에서는 플로피 디스크를 아예 제거해버렸다. 직렬, 병렬 포트도 없앴다. 인텔이 발명한 USB도 우리가 아이맥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맥북에어에서는 옵티컬 드라이브(CD)를 제거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제거해 왔고, 그럴때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선택을 내려야할 때가 있다. 더 멀리 가기 위해 올바른 말로 갈아타야할 때가 온다. 우리가 보기에 플래시는 지는 별이었다. HTML5가 태동하고 있었다. 플래시를 지원하려면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했다.”

원문 보기 Apple is a company that doesn't have the resources of everybody in the World. The way we've succeeded is by choosing what horses to ride really carefully, technically. We try to look for these technical vectors that have a future, and that are headed up. Different pieces of technology go in cycles. they have their springs, summer, and autumns, then they go to the graveyard of technology. So we try to pick things that are in their springs. If you choose wisely, you can save yourself an enormous amount of work versus trying to do everything. And you can really put energy into making those new merging technology be great on your platform, rather than just okay because you're spreading yourself too thin. So we have a history of doing that. As an example, we went from the five inch floppy disk to the 3 1/2 inch floppy disk with the mac. We were the first to do that. we made the 3 1/2 inch disk popular. Sony invented it, and we put it first in the products. We got rid of the floppy disk altogether in 1998 with the first iMac. We also got rid of serial and parallel ports. We were first to adopt USB even though Intel had invented it. You first saw it in mass on iMacs. And so, we have gotten rid of things. We were one of the first to get rid of optical drives, with the MacBook Air. I think things are moving in that direction as well. And sometimes when we get rid of things like the floppy disk drive on the original iMac people call us crazy. But sometimes you have to pick the things that look like they are gonna be the right horses to ride going forward. and Flash looks like a technology that had its day but it's really on its waning, and HTML5 looks like the technology that's really on the ascendency right now. And to incorporate Flash into the system is a lot of work, there's no smartphone shipping with Flash on it now as you know. ... But more importantly, HTML5 is starting to emerge.


그럼에도 모스버그는 이런 파격적인 결정의 대가가 소비자들에게 전가되어 불편함을 초래하고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집요하게 파고 든다. 웹의 많은 컨텐츠와 수많은 화려한 사이트들이 플래시로 제작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은 어떡하냐는 정당한 지적이었다. 이에 잡스는 10초 간 곰곰이 생각을 한 후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한다.

제품은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들의 모음집이다.

“Things are packages of emphasis”

“제품에서 어떤 기능은 굉장히 강조되어 있다. 어떤 기능은 별로 쓸만하지 않다. 심지어 아예 들어가지 않은 기능들도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은 제각각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시장의 목소리를 존중한다. 우리도 그냥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일 뿐이다. 단지 고객들을 위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우린 최소한 ‘이러이러한 것들은 최고의 제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의 용기와 신념이 있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결정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정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 정도 비난과 논란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올바른 기술에 투자해야한다. 고객들은 그런 결정을 우리에게 위임하기 위해 우리의 제품을 사고 우리에게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우리의 제품은 잘 팔릴 것이고, 실패하면 안 팔릴 것이다. 그렇게해서 모든 것들은 균형을 찾아간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건데 사람들은 아이패드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출시 이후 3초에 1대씩 팔리고 있다.”

원문 보기 Things are packages of emphasis. Some things are emphasized in a product, some things are not done as well in a product, some things are chosen not to be done at all at a product. And so different people make different choices. If the market tells us we're making the wrong choices, we listen to the market. We're just people running this company. We're trying to make great products for people. We have at least the courage of our conviction to say we don't think this is part of what makes a great product and we're going to leave it out. Some people are not gonna like that, some people are gonna call us names, it's not gonna be in certain company's best of interest but we're going to take the heat because we want to make the best product in the world for customers! We're gonna instead focus our energy on these technology which we think are on their ascendencies and we think we're gonna be the right technology for the customers, and you know what? They're paying us to make those choices. That's what a lot of customers pay us to do. If we succeed, they'll buy them! If we don't, they won't. And it will all work itself out. So far I have to say, people seem to be liking iPads! We've sold one every three seconds since we launched it.


애플의 제품을 오랫동안 써보면서 느끼는 것은 빼는 것의 중요성이다. 애플에 대한 높은 충성심은 고객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잘 내려주고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게 아닐까 싶다. 애플이 아이폰에서 3.5mm 이어폰 잭을 빼버렸을 때도 정말 많은 논란이 있었고 조롱도 받았다. 불과 3년도 안 된 지금 길거리에 나가보면 유선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꼭 에어팟이 아니더라도 각종 무선 이어폰이 유선 이어폰의 자리를 점령했다.

기능을 빼는 것은 추가하는 것보다 최소 수 배, 수십 배는 어렵다. 왜냐? 욕 먹을 각오를 해야하니까. 기능을 잘못 빼면 욕만 엄청 먹고 다시 되돌려야하고, 기능을 잘 빼도 처음에는 욕을 약간 먹고 시간이 지나야 잠잠해 진다. 잡스 말처럼 비난을 감수하려면 결정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조직이 굳이 욕먹을 각오를 하고 기능을 빼는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기능을 추가하고 그 기능의 사용자가 많거나 매출을 일으키면 그 기능을 만든 사람들이 성과를 인정 받는다. 하지만 기능이 누적될수록 서비스는 비대해지고 사용성은 복잡해진다. 새로 들어온 사용자는 오랜 시간 축적된 기능 더미 속에서 헤매게 된다. 며칠 전 대화를 나눴던 개발자 지인 한명은 대규모 코드 리팩토링을 하거나 메이저 기능을 개발하게 될때면 일부 작은 기능을 슬쩍 뺀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안좋게 생각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지인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능을 추가하는 것만큼이나 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훨씬 어렵고 위험한 일임에도 그 필요성을 느끼는 팀이나 회사가 있다면 그런 곳에서 정말 일해보고 싶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Life is fragile”

잡스는 2003년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그나마 수술을 통한 치료 가능성이 있는 희귀한 종류의 췌장암으로 판명이 되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한다. 그 후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잡스는 암이 완치됐다고 밝혔지만 2008년 암은 재발하고 2011년 세상을 떠난다. 인터뷰에서도 정말 많이 야윈 잡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식 인터뷰가 끝나고 공개 질의 세션에서 한 남성이 질문했다.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연설을 하고 몇 년이 지났는데 혹시 덧붙이고 싶은 것이 생겼느냐고.

“음..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 했던 말을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왜냐면 지난 몇 년 간 난 인간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더욱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원문 보기 “Oh I have no idea. I have no idea. Probably I would just turn up the volume on it because last few years have reminded me that life is fragile.”